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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를게 없는 식사였다. 알맞게 지어진 밥과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장조림과 너의 머리칼을 닮은 계란프라이. 다른게 있다면 너의 젓가락은 일회용 나무젓가락이라는 정도였다.
너의 나무젓가락이 반숙된 계란프라이의 노른자를 터트렸다. 케찹과 잘 휘저어 밥 위에 얹은 주홍빛 계란은 네 입으로 향했다.
네가 입 안의 음식을 거의 다 씹어 갈 때 즈음, 너에게 물었다.

"비행기 시간 몇시라고 했지?"
"오후 세 시. 가는데 한 시간정도 걸리니까 여유있게 타려면 곧 가야겠네."
"짐은 다 싼거야?"
"어제 웬만한건 전부 택배로 부쳤어.저 캐리어 하나만 가져가면 돼."

너는 웃으며 식탁 아래에 놓은 캐리어를 가리켰다. 남은 밥을 전부 입에 털어넣고 우물거리다 꿀꺽 삼켰다. 넌 다 먹은 그릇을 치우려 일어섰다. 동시에 들려오는 쿵, 소리. 그리고 터진 나의 웃음소리와 너의 앓는 소리.

"푸흐흐, 맨날 부딪히네."
"아오, 아파라... 그러게. 매번 부딪히니까 치워야지, 치워야지 생각만 하고 결국 못 치웠네."

저건 이 집에 처음 왔던 날 부터 있던 전등이었다. 분위기있게 식사하라는 집주인의 배려같지만, 나보다 키가 큰 너는 일어설 때마다 부딪히기 일수였다. 그러면 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문지르곤 했다. 지금의 너처럼.
시계를 보니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허탈한 웃음만이 터져나왔다. 그런 나를 너는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는 보란듯이 눈을 휘어접으며 웃었다. 최대한 밝아 보이도록, 아무렇지 않아 보이도록 환하게 웃었다.

"얼른 가. 비행기 놓치겠다."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캐리어를 질질 끌며 넌 현관에 놓여있던 운동화를 구겨신었다. 그렇게 신발 신지 말라니까. 뭐, 어때. 너는 웃는다. 나도 따라 싱긋 웃었다.
너는 사뭇 진지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난 그 눈빛의 뜻을 아주 잘 안다. 이건 이별이다.

"잘 있어야 돼."
"응. 그럴게."
"밥도 제때 잘 챙겨먹고, 아프지 말고."
"응."
"울지 말고."
"...응."

끝을 흐리며 대답하는 내 입술에 너의 입술이 맞닿았다. 눈을 질끈 감은 너와 달리 난 눈을 감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너의 얼굴을 보고싶었다. 짧게 닿았던 입술이 아쉽게 떨어졌다. 그리고 너의 목소리는 내게 속삭였다. 정말 잔인하게 속삭였다. 날 잊어, 카네키.

"뻔뻔하게 키스까지 하고서 그런 말이 나와?"
"하핫, 마지막이잖아."

그래, 마지막이지. 마지막이니까.
너의 품에 안겨 얼굴을 파묻었다. 순간, 굳었던 네 팔은 나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투정부리듯 웅얼거리며 말했다.

"잘 가란 말, 안 할거야."
"응."
"가지 말라고 안 할거야."
"어."
"보고 싶다고도 안 할거야. 앞으로도."
"그건 좀 섭섭한데."
"잊으라며."
"그래도 섭섭할 것 같아."

너는 늘 그랬다. 웃는 얼굴로, 순진한 목소리로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걸 잘 알면서도 난 늘 흔들렸다. 이번에도, 나는 흔들렸어. 네가 나쁜거야.
등에 둘렀던 팔을 풀러 네 목에 감았다. 그리고는 네가 한 것 처럼 입을 맞추었다. 아까보단 조금 길게, 아까보다 조금 더 애뜻하게.
살며시 입술을 떼어내며 말했다. 안녕. 너는 답했다. 응, 잘 지내.
너는 캐리어를 한 손으로 들고서 현관문을 열었다. 열린 문 틈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왔다.
이제 작별의 시간이다. 무슨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목이 막힌 것 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넌 살풋 웃으며 뒤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눈을 감았다. 너의 뒷모습을 보기 싫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채, 문이 닫혔다. 바퀴가 끌리는 소리, 너는 떠났다.
바퀴가 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만큼 멀어져도 눈을 뜨지 않았다. 이제 내가 혼자 살아갈 집을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두려움이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조심스레 눈을 뜬다. 눈을 뜨니 지금까지 알던 집과는 다르게 보였다. 나는 조용히 웃는다. 이제 정말 혼자구나. 내 목소리가 고요히 울려퍼졌다.
끼익, 침실의 문이 삐걱거렸다. 나는 침실로 걸어가 문고리를 잡아돌렸다. 익숙해진 삐걱소리가 길게 들려왔다. 그 소리너머로 본래의 모습으로 벗겨진 침대가 보였다. 슬리퍼를 끌며 매트리스에 걸터앉았다. 손을 뻗어 까슬한 표면을 어루만졌다. 괜스레 옛날 생각이 났다.
둘이 살기에는 이 집은 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보니 집은 제법 넓었다. 빈 만큼 넓어졌다. 사라진 만큼 넓어졌다. 그만큼 마음도 훵하니 비었다.
침대에 누워 함께 얼룩진 천장을 보며 더 큰 집으로 이사가자고, 지긋지긋한 원룸에서 벗어나자고 웃던 네가 떠올랐다.
이젠 소용없는 계획이지만.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문을 닫고 부엌을 바라보았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너와 나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을 훑어보았다. 너는 요리에 그닥 소질이 없었다. 그 덕에 요리는 전부 내 몫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라진 게 딱히 없었다.
너야말로 밥이나 굶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맨날 사먹지는 않을까, 인스턴트로 대충 끼니를 때우지는 않을까.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깨닫는다. 전부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천천히 살펴보던 눈이 멈춰섰다. 식탁 위에 달아 뒀던 전등이 아직도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 흔들. 흔들리는 전등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 유일하게 남은 너의 흔적, 곧 멎을 너의 흔적. 아마 이 전등이 다시 흔들릴 일은 없겠지. 네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거야.
나는 천천히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울음소리를 들을 사람은 없었지만 최대한 소리를 꾹꾹 눌렀다. 혹시라도 네가 돌아올까봐. 아니, 그러길 바래. 네가 다시 내게 돌아오길 바래. 전등이 흔들대다 멈추었다.
그리고, 너의 흔적이 사라졌다.
더 이상 이 집에는,
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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