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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볼 때마다 느낀다. 아, 너를 볼 때마다 심장이 떨려오는 건 어째서일까. 나는, 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걸까. 애초에 그 답은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 이 마음은 감히 말하기도 버거울 정도로 가슴이 떨려오는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이다.

 오해와 착각으로 뒤덮힌 나의 오만일수도 있다. 하지만, 너를 사랑하지 않은 시간보다 너를 사랑한 시간이 더 많다. 이 감정의 깊이는 날이 가면 갈 수록 심해로 치닫고, 내가 빠져나오지 못 할 만큼 진득해진다.

 너는 내 눈에 더 이상 친구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내가 애타게 사랑하는 사람일 뿐, 그 뿐이다. 너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너를 사랑하게 된 순간까지 너에게서 눈을 뗀 적이 없다. 가당치 않을지도 몰라도 나는 너와 사랑을 하고 싶다. 나 혼자하는 사랑이 아닌, 너와 함께 숨쉬는 사랑을 하고 싶다.

 네 눈빛에서도 느껴진다. 분명히 안된다, 해서는 안된다, 제멋대로 생각하며 나를 피하는게 느껴지는데, 난 십여년을 기다렸다. 너의 눈길이 나에게 향하기를, 네가 나와 같은 마음임을 확인할 순간을. 

 기다리는 건 자신 있다. 그러니, 언제든 와주길 바란다,

 네가 정한 정의를 부수고 나와 함께 새로 써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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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 나의 관계는 '우정'이라는 단어에 함축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우리는 '친구'의 사이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두 글자밖에 되지 않는 단어의 무게감은 나의 숨통을 조여오며 협박한다. 그 아이를 사랑해서는 안 돼. 고작 너따위가?

 그저 지극히 단순한 감정이 너를 속인거야. 네가 오해하는 거라고, 너의 착각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감정을 비워내고 사랑을 게워내야 한다. 내 안에 살아 숨쉬는, 너를 사랑하는 나를 죽여야한다. 이 사랑은 절대로 인정 받을 수도, 이해되어서도 안된다. 시작할 수도, 시작하려는 용기조차 내지 못 한 채 나의 사랑은 목말라 죽어 갈 것이다.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저, 너를 사랑하는 것이 나이기 때문에, 이 사랑은 성립되어서는 안된다. 라고 정의된다. 나의 사랑은.

 금기로 가득 찬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조금씩 녹슬어 간다. 혈액을 닮은 비릿한 향을 풍기며, 너를 닮은 주홍빛으로. 차갑고 외롭게 녹슬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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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와 카네키는 소꿉친구가 아니라는 설정입니다.

-스토리의 에필로그에 해당됩니다.

-초반이기에 히데는 나오지 않습니다.

-카네키의 기록입니다. 

 

 

 

 

 

 

 

-스무살의 봄- #0 <회고록>

[NAGACHIKA HIDEYOSI X KANEKI KEN]

 

 

 

 

 

 이건 나라는 존재에 대한 회고록이다.

 내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궁금한 사람은 없을거다. 그리고 굳이 이 글을 찾으려는 사람도 없을거다. 그렇지만, 나는 이 짦은 생을 조금이나마 추억하고자 기록하고자 한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아마 나라는 인간에 대한 비평과도 다름 없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손의 주인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이기에, 그렇게 지레짐작해본다.

 

 나의 삶은 사랑받고 싶어서 발버둥 친 흔적이 얼룩덜룩 묻어있다. 나는 그저 사랑 받고 싶었을 뿐인데, 내 곁에는 항상 미움과 시기로 가득했다. 악의 없는 괴롭힘, 약자를 향한 무의미한 신체적언어적 폭력.  

 물론 그것에서 벗어나려 노력 할 수 있었을 거다. 아마도 그랬겠지. 하지만, , 나는 너무나도 가식적이라서, 미움받는 건 여전히 싫고 싫어서, 참고 또 참아버려. 타인을 파괴해서 미움받으면 스스로 파멸에 이를 자신을 잘 아니까,

 그냥 나 스스로, 나를 부숴나가는 거야. 속에서 부터 겉까지, 전부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서도 나는 십몇년을 나 자신을 부수며 살아왔다. 무수히 많은 상처들에서 새어나온 부정적인 감정은 내 주위로 차올라 어느 새, 나의 숨을 앗아갈 정도로 넘실대며 나를 감싸왔다.

 상처를 준 건 당신들이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나의 것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오롯히 내 자신이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서,

 그냥 내가 죽어버리면 되는거잖아, 라는 종착점에 도착했다. 그것이 육체의 죽음이든, 정신의 죽음이든, 나는 죽겠지. 썩어버리고 미쳐버린 나에게, 스스로 죽어갈거야.

 슬슬 이제 한계임을 깨달아 갈 때, 나는 내 자신이 정말 위선자임을 깨달아갔다.

 날 그렇게 좋아하자, 사랑하자 다독일 때는 언제고, 지금은 나 스스로 자멸하기를 종용하는구나.

 내 자신에게, 나는, 쓰레기네.

 새삼 깨달아버렸구나.

 더 이상 사랑 받기를 바라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도, 내 자신에게도.

 

 이제 곧 찾아올 스무살의 봄에,

 나의 시간은 멈춘다.

 

 

[201x1xx

작성자, 카네키 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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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를 구원해주신 신이었어요. 무너져가는 나의 세상에서 나를 구해주신 나만의 신.
당신을 위해서 살리라 마음먹은건 그가 나를 보고 웃어주었을 때, 저는 당신을 위해 죽겠다고 다짐했답니다. 당신이 구해주신 목숨, 당신을 위해 쓰겠노라 맹세했어요.
당신이 나에게 해주는 말이 나에게는 삶의 의미였어요. 조금 더, 한 마디라도 더 듣고 싶어서 난 강해졌어요. 강해지면 더 많은 구울을 죽일 수 있으니까, 더 많은 실적을 쌓고서 당신과 나란히 하고 싶었으니까. 그게 내가 이 곳, CCG에 존재하는 이유였으니까.

내 세계의 신, 아리마씨. 난 당신을 원했어요. 하지만, 난 아직 약한가봐요.

한 번 만,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 당신이 웃는 모습을 보고싶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당신 생각이 내 마지막 기억이라는 게, 웃으면서 죽을 수 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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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를게 없는 식사였다. 알맞게 지어진 밥과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장조림과 너의 머리칼을 닮은 계란프라이. 다른게 있다면 너의 젓가락은 일회용 나무젓가락이라는 정도였다.
너의 나무젓가락이 반숙된 계란프라이의 노른자를 터트렸다. 케찹과 잘 휘저어 밥 위에 얹은 주홍빛 계란은 네 입으로 향했다.
네가 입 안의 음식을 거의 다 씹어 갈 때 즈음, 너에게 물었다.

"비행기 시간 몇시라고 했지?"
"오후 세 시. 가는데 한 시간정도 걸리니까 여유있게 타려면 곧 가야겠네."
"짐은 다 싼거야?"
"어제 웬만한건 전부 택배로 부쳤어.저 캐리어 하나만 가져가면 돼."

너는 웃으며 식탁 아래에 놓은 캐리어를 가리켰다. 남은 밥을 전부 입에 털어넣고 우물거리다 꿀꺽 삼켰다. 넌 다 먹은 그릇을 치우려 일어섰다. 동시에 들려오는 쿵, 소리. 그리고 터진 나의 웃음소리와 너의 앓는 소리.

"푸흐흐, 맨날 부딪히네."
"아오, 아파라... 그러게. 매번 부딪히니까 치워야지, 치워야지 생각만 하고 결국 못 치웠네."

저건 이 집에 처음 왔던 날 부터 있던 전등이었다. 분위기있게 식사하라는 집주인의 배려같지만, 나보다 키가 큰 너는 일어설 때마다 부딪히기 일수였다. 그러면 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문지르곤 했다. 지금의 너처럼.
시계를 보니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허탈한 웃음만이 터져나왔다. 그런 나를 너는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는 보란듯이 눈을 휘어접으며 웃었다. 최대한 밝아 보이도록, 아무렇지 않아 보이도록 환하게 웃었다.

"얼른 가. 비행기 놓치겠다."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캐리어를 질질 끌며 넌 현관에 놓여있던 운동화를 구겨신었다. 그렇게 신발 신지 말라니까. 뭐, 어때. 너는 웃는다. 나도 따라 싱긋 웃었다.
너는 사뭇 진지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난 그 눈빛의 뜻을 아주 잘 안다. 이건 이별이다.

"잘 있어야 돼."
"응. 그럴게."
"밥도 제때 잘 챙겨먹고, 아프지 말고."
"응."
"울지 말고."
"...응."

끝을 흐리며 대답하는 내 입술에 너의 입술이 맞닿았다. 눈을 질끈 감은 너와 달리 난 눈을 감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너의 얼굴을 보고싶었다. 짧게 닿았던 입술이 아쉽게 떨어졌다. 그리고 너의 목소리는 내게 속삭였다. 정말 잔인하게 속삭였다. 날 잊어, 카네키.

"뻔뻔하게 키스까지 하고서 그런 말이 나와?"
"하핫, 마지막이잖아."

그래, 마지막이지. 마지막이니까.
너의 품에 안겨 얼굴을 파묻었다. 순간, 굳었던 네 팔은 나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투정부리듯 웅얼거리며 말했다.

"잘 가란 말, 안 할거야."
"응."
"가지 말라고 안 할거야."
"어."
"보고 싶다고도 안 할거야. 앞으로도."
"그건 좀 섭섭한데."
"잊으라며."
"그래도 섭섭할 것 같아."

너는 늘 그랬다. 웃는 얼굴로, 순진한 목소리로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걸 잘 알면서도 난 늘 흔들렸다. 이번에도, 나는 흔들렸어. 네가 나쁜거야.
등에 둘렀던 팔을 풀러 네 목에 감았다. 그리고는 네가 한 것 처럼 입을 맞추었다. 아까보단 조금 길게, 아까보다 조금 더 애뜻하게.
살며시 입술을 떼어내며 말했다. 안녕. 너는 답했다. 응, 잘 지내.
너는 캐리어를 한 손으로 들고서 현관문을 열었다. 열린 문 틈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왔다.
이제 작별의 시간이다. 무슨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목이 막힌 것 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넌 살풋 웃으며 뒤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눈을 감았다. 너의 뒷모습을 보기 싫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채, 문이 닫혔다. 바퀴가 끌리는 소리, 너는 떠났다.
바퀴가 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만큼 멀어져도 눈을 뜨지 않았다. 이제 내가 혼자 살아갈 집을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두려움이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조심스레 눈을 뜬다. 눈을 뜨니 지금까지 알던 집과는 다르게 보였다. 나는 조용히 웃는다. 이제 정말 혼자구나. 내 목소리가 고요히 울려퍼졌다.
끼익, 침실의 문이 삐걱거렸다. 나는 침실로 걸어가 문고리를 잡아돌렸다. 익숙해진 삐걱소리가 길게 들려왔다. 그 소리너머로 본래의 모습으로 벗겨진 침대가 보였다. 슬리퍼를 끌며 매트리스에 걸터앉았다. 손을 뻗어 까슬한 표면을 어루만졌다. 괜스레 옛날 생각이 났다.
둘이 살기에는 이 집은 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보니 집은 제법 넓었다. 빈 만큼 넓어졌다. 사라진 만큼 넓어졌다. 그만큼 마음도 훵하니 비었다.
침대에 누워 함께 얼룩진 천장을 보며 더 큰 집으로 이사가자고, 지긋지긋한 원룸에서 벗어나자고 웃던 네가 떠올랐다.
이젠 소용없는 계획이지만.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문을 닫고 부엌을 바라보았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너와 나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을 훑어보았다. 너는 요리에 그닥 소질이 없었다. 그 덕에 요리는 전부 내 몫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라진 게 딱히 없었다.
너야말로 밥이나 굶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맨날 사먹지는 않을까, 인스턴트로 대충 끼니를 때우지는 않을까.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깨닫는다. 전부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천천히 살펴보던 눈이 멈춰섰다. 식탁 위에 달아 뒀던 전등이 아직도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 흔들. 흔들리는 전등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 유일하게 남은 너의 흔적, 곧 멎을 너의 흔적. 아마 이 전등이 다시 흔들릴 일은 없겠지. 네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거야.
나는 천천히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울음소리를 들을 사람은 없었지만 최대한 소리를 꾹꾹 눌렀다. 혹시라도 네가 돌아올까봐. 아니, 그러길 바래. 네가 다시 내게 돌아오길 바래. 전등이 흔들대다 멈추었다.
그리고, 너의 흔적이 사라졌다.
더 이상 이 집에는,
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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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카나에


2.사이코

3.카네키(흑)

4.구울

5.아몬

6.쥬조

7.나키

8.츠키야마




9.히데(사진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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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시끌벅적한 교실 안에는 두 아이가 있었다. 시라즈는 활발한 아이였고 우리에는 사교성이 전혀 없는 아이였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둘은 아무 생각없이 뽑은 제비때문에 짝꿍이 되었다.
한 아이는 친해지려했고, 한 아이는 모든 것을 무시했다. 그것이 시발점이였던 것 같다. 이 지긋지긋한 악연의 시작이.
처음 본 그때는 몰랐을 뿐이다. 그 두 사람이 초등학교를 다니는 6년동안 같은 반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6년동안 같은 반이였다고 해서 두 사람이 둘도 없이 친해진 것은 아니였다. 그저 우리에에게는 얼굴과 이름을 아는 몇안되는 사람중 하나였고, 시라즈에게는 유난히 까칠하고 붙임성없는 범생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시라즈가 숙제를 안 했으면 한심한 눈빛으로 숙제를 빌려주는 유일한 아이였고, 아이들에게 따돌림받을 수도 있던 우리에를 감싸며 아이들에게 이해를 구하던 유일한 아이였다.
그러면서 조금씩 가까워져갔다. 그렇게 친밀한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지만,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감정을 쌓아갔다.
그렇게 지내던 중, 어느 새 곧 중학교에 갈 때가 다가왔다.
여느때와 다름 없는 날이였다. 평소와 같은 날이였지만 우리에에게는 달랐다. 숙제를 빌려달라는 말이 아닌 다른 말을 하던 시라즈때문이였다.

"오늘 시간있냐."
"학원은 안 가는데, 왜."
"그,그냥 너한테 뭣 좀 물어볼게있어서."
"지금 물어봐."
"아니, 조금 이따가...그러니까 고민상담같은건데..."
"그걸 왜 나한테 해?"
"아니, 넌 똑똑하잖냐. 그러니까...하여튼 시간은 되는거지? 8시에 우굴공원에서 만나."
"...그래."

말을 마친 시라즈는 '그럼, 꼭 나와!'라는 당부와 함께 쏜살같이 사라졌다. 뭔가 폭풍같이 지나간 대화를 곰씹어보며 우리에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조금은 어이없었지만, 웃음이 나왔다. 우리에는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 * *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시게를 보았다. 7시 56분. 늦지는 않았네. 우리에는 흘러내린 책가방을 바로 매었다.
공원 안으로 좀 들어가니 그네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시라즈가 보였다. 우리에는 말없이 옆의 그네에 앉았다. 인사도 없이 두 사람은 가만히 앉아있었다.

"야."
"왜."

침묵을 깬건 시라즈였다. 흔들거리며 녀석은 우리에를 불렀다. 짧은 대답을 들으며 시라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
"...누군데."
"글쎄. 너도 잘 아는 사람이야."

같은 반인가. 우리에는 낮게 읊조렸다. 그 낮은 혼잣말을 못들은건지, 무시하는건지 시라즈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 녀석, 생긴건 예쁘게 생겨서 성격은 엄청 못되먹었거든. 말 할때 한 번도 예쁘게 말 해준적도 없고."
"그딴 녀석이 뭐가 좋다고 그러냐."
"그러게. 내가 봐도 내가 돌은 것 같은데 오죽하겠냐."

그 아이 생각을 하고, 그 아이의 말을 하면서 웃는다. 여태까지 봐온 시라즈의 웃음중에서 제일 좋아보인다. 어째서인지 우리에는 가슴 한 켠이 불편해져왔다.

"걔 공부 되게 잘한다? 완전 범생이라서 선생님들도 좋아해. 선생님들한테는 예의바르거든."

고개를 밑으로 숙인 채, 발로 돌멩이를 툭툭, 건드리는 우리에를 흘깃 쳐다보더니 시라즈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고백하려고."

그 한마디에 우리에는 그네에서 박차고 일어섰다. 당황한 듯, 따라 일어선 시라즈에게 우리에는 이를 빠드득 갈며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잘 해보던가."

바닥에 놓여진 가방을 들고서 제 집의 방향으로 몸을 틀자 자신의 팔목을 잡아세우는 손길이 느껴졌다. 시라즈다.

"야! 어디 가! 우리에!"
"할 말 끝난거 아니야? 더 이상 들을 이유 없어."
"안 돼! 니가 끝까지 들어줘야된다고!"
"내가 왜."

어째서인지 모르게 화가 났다.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흔히들 말하는 베스트프렌드도 아니다. 저 녀석과는 그냥 아는 사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냥 고민상담 좀 해달라고 했을 때, 들어준 것 뿐이다. 그것 뿐인데 그 일이 이렇게 짜증날 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쁘다고 하고서 거절할걸. 우리에는 날카롭게 시라즈를 째려보았다. 그러자 시라즈는 머뭇거리며 입술을 움찔거렸다.

"그거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니깐. 병신아!!"

큰 소리가 잦아들어 적막함이 감도는 놀이터에는 오래된 그네가 삐걱대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어둠을 살며시 비추는 가로등 불빛에 시라즈의 발게진 얼굴이 보였다. 우리에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예쁘다며."
"내 눈엔 니가 제일 예뻐보여."
"성격 더럽다며."
"그건 너도 잘 알지 않냐."
"...이해가 안 돼."
"나도 널 왜 좋아하는지 이유를 모르겠거든."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계속해서 머리는 긁적이고, 평소와 달리 떨리고 낮은 목소리가 말해준다. 이것은 진심이라고. 6년간 어렵사리 쌓아온 감정이라고. 그렇게 온 몸으로 우리에에게 말했다.

"그,그러니까아 우리에."

나랑 사귀자. 용기를 내어 입 밖으로 꺼냈다.
느껴진다. 시라즈녀석의 마음이 우리에에게로 전해진다. 아마 녀석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뛰고 있겠지. 아마 그럴거야.

"누가 너같이 멍청하고 다혈질인데다가 못생긴 바보랑 사귀냐."
"하아? 우리에, 말이 심하잖냐?!"

지금 나도 그러니까. 두근거리는 심장이 냉철하던 머리를 물들였다. 물들어서 붉으스름해진 머리가 시키는 대로 우리에는 성큼성큼 다가서서 시라즈의 볼에 살며시 입술을 가져다대었다. 상황파악이 안되는지 멀뚱멀뚱 쳐다보던 시라즈의 눈이 서서히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야,야!!! 우리에?!?!"
"뭐."
"아니,그게. 지금 뭐한거냐고??!!"
"뽀뽀."
"야, 임마!!!"
"...좋아하니까 한건데 뭐 문제있냐고."

시라즈는 자신의 귀와 눈을 의심했다. 태연하게 말하는 우리에의 어둠 속에 가려진 우리에의 두 볼의 홍조를 보았다.
괜히 웃음이 터져나왔다.

"뭐라구우?"
"아, 몰라."
"야, 다시 한 번만 말해줘. 뭐라고?"
"꺼져."
"리에도령. 한 번만 더 말해주세요!!"
"아, 꺼져.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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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하이] 거울

[ TKG ] 2015. 5. 29. 23:49



언제부터인지 거울을 보면 내가 보이지 않는다. 거울에 비추어보면 보이는 것은 백발의 '나'.

-안녕?

나를 보며 웃는 '나'다. 내가 무슨 표정을 짓던지, '나'는 늘 웃고있었다. 이죽이며 웃는 '나'는 나를 비웃었다.
거울에 손을 얹자 '나'도 따라 손을 얹었다. 느껴지는 건 차가운 유리의 감촉. 머뭇거리던 나는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저인가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아마 제 과거와 관련있지 않을까싶습니다."
-흐음, 그래?

그렇다면 그게 맞겠지. 난 너이니까. '나'는 나의 눈을 마주하며 작은 웃음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
-하이세, 넌 미치지 않았어. 난 너야. 넌 나이고.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유리너머의 눈이 빛을 받아 빛났다.

-자, 내 손을 잡아.
"...어떻게...?"
-일단 해 봐. 그렇다면 모든게 달라질거야.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아도 돼. 슬퍼하지 않아도 돼.

멍청한 나는 그 말에 속아 손은 내밀었다.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기 무섭게 무엇인가가 내 팔목을 낚아챘다.
이어 느껴지는 것은 머리를 뒤흔드는 어지러움, 그리고 찰나의 어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무엇인가가 달랐다.
저 너머에서 보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니였으니.

"고마워, 하이세. 아아, 이제 해방이네."
-뭐야, 이게...?!
"이제 이 몸은 내 꺼라는 거지. 보기보단 멍청하구나? 기억만 잃은게 아니라 지식도 잃었나? 난 이렇게 멍청하진 않았는데."
-안 돼!! 돌려줘!!
"늦었어. 이제 내 몸이야. 고맙다. 이제 안녕이네."

거울을 어루만지던 손이 거울 속으로 파고 들었다. 모든게 깨져 제 몸을 찌르는 듯 했다. 아니, 깨진건 내 몸인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다신 볼 일 없었으면 좋겠네."

깨진 거울조각을 밟으며 입꼬리를 말아올려 웃었다.
더 이상 거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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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다. 또 이상한 꿈.
꿈이라는걸 알 수 있는건 이상하게 하얀 하늘과 내 발 끝에서부터 한 송이, 한 송이씩 길을 안내하듯 피어있는 하얀 꽃들.
그 꽃의 이름을 알 수는 없지만, 어디선가 본 듯 했다. 어디서 보았더라? 의문을 품은 채, 나는 꽃길을 따라 걸었다.
나의 발걸음이 닿은 꽃은 제 색을 잃고 발갛게, 아주 발갛게 물들었다. 마치 피와 같이, 빨갛게 제 몸을 물들였다.
"오랜만이네?"
아무런 생각없이 걷던 나에게 어떤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자수정과 같은 머리칼과 빨간 뿔테안경, 어째서인지 낯이 익었다. 어디서 보았더라?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뭐야? 인사도 안 해주는 거야? 너무하네. 그런 사람은 아니였는데."
"저를, 아십니까?"
"잘 안다면 잘 알고, 모른다면 모른달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째서 제 꿈속에..."
꿈이라...? 그녀는 눈을 접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꿈이라고 생각해?"
"이게 꿈이 아니라면 뭐란 말이죠?"
"글쎄? 뭐, 니가 좋을대로 생각해. 그게 편하겠지."
그녀는 꽃을 따라 걷는 나의 곁에서 말을 걸어왔다.
"일은 좀 할만 해?"
"네. 조금 힘들긴 해도 보람차고 재미있어요. 제가 많이 모자라지만 도와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저를 따르는 아이들도 있고요."
"흐음, 그래?"
머리 끝을 매만지던 그녀는 재미없다는 듯이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무엇인가를 느꼈다. 심장이 쿵쿵대며 요동쳤다. 지금 이 감정은 뭐지?
그녀가 다시 물었을 때, 그 답을 찾았다.
불안감이었다.
"그렇다면 너는 행복해?"
"네?"
"지금 행복하냐고."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하려 했다. 나는 지금에 만족한다. 너무나도 행복하다. 지금 이 생활이 너무나 좋다. 그렇게 대답하려했다.
하지만, 등 뒤로 무언가가 지나다니는 기분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벌레같은 느낌이였다. 뭐더라? 이런 느낌, 알았었는데?
나오려던 말을 다시 집어삼켰다.
"뭐야? 왜 대답 안해?"
"저,저는...그게..."
"뭐, '저는 행복합니다.'라는 말 하려던건 아니지?"
"..."
"거짓말쟁이."
"거짓말같은게 아닙니다!"
"그래? 그렇다면 말야-"
네 기억이 돌아온다고 해도 이 곳에 머무를 수 있겠어?
아, 말이 나오질 않아. 머리가 하얗다. 어지러워.
그녀는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 같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질문을 바꿀까?"
그녀는 웃으며 내게 물었다.
네 이름은 뭐야? 아까보다 더 단순한 질문이였다. 역시 대답하려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답해, 나는...나는!! 대답을 쥐어짜듯, 제 목을 스스로 졸랐다. 숨이 막혔다.
그런 나를 보며 그녀는 대답을 종용하며 나에게 속삭였다.
"넌 누구야?"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난..."
"힌트를 줄까?"
그녀는 나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 위에 얹었다.
"넌 나를 좋아했던 사람이었지."
"ㄱ,그만..."
"하지만, 너무나도 어리고 멍청했어."
"그만해..."
"그래서, 넌-"
"그만!!!"
"나와 같은 눈을 가지게 되었지."
절규하는 나의 얼굴을 억지로 들게하여 그녀의 얼굴과 마주하게 했다.
그녀의 눈은 잔인하게 붉고, 어두웠다.
"어때? 예쁜 눈이지? 이런 붉은 눈 어딜가도 없다고?"
"아니야...그런,그런게...나는...난...!!"
붉게 물든 꽃잎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에 비친 하늘이 발갛게 변했다.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슬슬 시간인가?"
"잠시만...기다려!"
"다음 번에 만날 때에는 네가 울고 있을까? 그럼, 다음에 또 보자-"
카네키.
부서지기 시작한 빨간 하늘이 그녀의 몸을 갈갈이 찢었다. 모든게 붉게 물들었다. 빨갛게, 빨갛게.
코를 찌르는 피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져갔다.
깨어나, 깨어나라고. 이런 거지같은 꿈에서 깨어나란말이야. 주저앉은 채 울부짖었다.
그리고, 지네가 기어가는 것 같은 등을 손톱으로 할퀴었다. 사라져, 사라지라고!
그 소리를 잠재우듯, 누군가가 나즈막히 얘기했다.

-이제 잠들 시간이야.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 동안 수고했어.

그 목소리는,

-잘 자렴, 하이세.

나의 목소리였으니까.

-이제 안녕이야.

빨갰던 하늘이 전부 무너지고 흐려져갔다. 그와 함께 나의 시야도 흐려져갔다.
넌 누구야? 이제,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카네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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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다 알면서 왜...?"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제가 아몬씨를 죽일텐데요?"
"난 늘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 상관없어."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어째서, 어째서예요...난...당신을..."
"스즈야."
그는 단호하게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어쩔줄 몰라 흔들리던 아이의 눈동자가 그의 눈과 마주쳤다.
"아몬씨..."
"네 말대로 넌 날 죽이겠지. 그러려고 내게 왔을테니까."
"..."
"이런 일을 계속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기지. 누가 나를 해칠건지, 누가 나에게 가식적으로 대하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의 감이라는건 꽤나 정확하거든."
"그렇다면 알았을거 아녜요. 난...나는..."
"스즈야."
"...네."
"말했지만 사람의 감은 정확하다. 그러니 내 감도 맞겠지."
"...전 나쁜 아이인가요?"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아니, 넌 착한 아이다."
"네?"
"여태껏 봐온 네 표정과 눈은 거짓이었던 적이 없었다. 넌 내게 거짓말 한 적 없지 않나? 지금도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해주었으니 말이다."
"아니에요, 전 나쁜 아이예요. 전, 저는-"
"쥬조."
순간, 아이의 숨이 멈췄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울림에, 아이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괜찮다. 괜찮으니까 네 임무를 충실히 해라."
"네?! 그,그러면 아몬씨는요!!"
"나도 내 임무를 다할거다. 그러니 걱정마라."
멍청한 사람, 바보같은 사람. 아이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칭얼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는 피식, 웃었다.
"네 손에 죽는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이는 소리죽여 울었다.
고통이라는 감정이 다시 살아난 것 같았다. 마음이라는게 너무 아려왔다.
그는 말없이 아이를 더 세게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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