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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어머니가 떠난 그때 부터 였을까. 나는 입을 잘 열지 않았고 허공을 바라보는 게 나의 일상이 되었다. 무언가가 텅 비어서 찬 바람이 들어 닥치는 것 같았다. 공허한 마음에서 불어나온 바람은 나를 얼렸다. 점점 더 퍼져만 가는 감정을 알 수가 없었다. 슬픔이라고 정의 하기에는 덤덤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은 얼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차가운 가면을 쓰게 되었다. 누구도 나의 표정을 알 수없게, 나의 마음을 알 수없게. 나는 가면을 썼다.
그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너를 만났다. 아무도 관심이 없던 내게 손을 내밀어주고 웃어주던 너. 넌 나의 태양이야. 그렇게 생각하던 날이 많아질 수록 나는 네게 물들었고 너는 내게 스며들었다. 너는 나, 나는 너. 어딜가나 함께 붙어있었고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제일 좋았다.
어쩌면 당연한 소리일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부족한 서로가 그 부분을 채워 준다는 것은. 나는 모든 것이 얼어 붙어 공허해져만 갔고, 너는 노랗게 불타올라 모든 공간을 채웠다. 당연한 일이야.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는 건, 정말로 당연한 일이야. 마치 태양과 달처럼. 너의 빛에 내게로 와 내가 빛을 낼 수있게 된 것처럼.
정말로 그랬다. 지금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린 만난게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였고, 운명이였던 것같다. 그걸 알게된건 중학생때 였을까? 그래, 그때였을거다. 네가 처음으로 '발작'을 일으키던 그 날.
너의 발작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히데와 같이 점심을 먹고나서 나는 잠시 도서관에 들려 책을 읽겠다고 했고, 너는 알았다며 먼저 교실에 갔다. 어느 덧, 수업시간이 다가와 읽던 책을 도로 꽂아놓고서 교실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학교의 복도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소란스러웠다. 그렇지만 유난히 우리 반이 시끄러운 것 같았다. 무슨 일인지 문을 열고나니 보인 것은 너의 모습이였다. 핏대를 세운 채,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리던 너를.
책상을 뒤엎고 의자를 발로 차던 너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차마 다가가질 못했다. 주위의 친구들이 말려보라고 등을 떠밀고나서야 나는 너에게 걸어갔다.
"ㅎ,히데. 진정해."
"뭘 진정하라는 거야! 난 지금 아무렇지도 않다고!!"
너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나의 멱살을 잡았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너의 두 눈은 평소와 같이 장난기 넘치치지도 않았고, 웃음을 머금고 있지도 않았다. 눈물을 흘리는 눈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오로지 분노, 그 뿐이였다.
당황해서 떨려오는 손으로 멱살을 잡고 있는 너의 손을 잡았다. 잡은 손은 뜨거웠다. 독감에 걸린 아이마냥 너무 뜨거웠다. 너의 눈을 마주하고서 말했다. 히데, 진정해. 그러자 사납게 노려보던 눈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멱살을 잡았던 손에 힘이 빠져나갔다. 멱살을 풀고나서 너는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괜찮냐는 나의 물음을 무시하며 뒷걸음질치던 너는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ㅎ,히데!!"
바닥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너를 보고서 너에게 달려갔다. 바닥에 쓰러지며 머리부터 부딫혔는지 이마에 피 한 가닥이 흘러 내렸다. 그런 너의 모습을 보자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어떻게 해야하지, 어쩌지. 그렇게 허둥대니 문이 열리고서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몰려있는 아이들을 헤치고서 너에게 와 상태를 확인한 뒤, 들쳐업고서 문 밖으로 나섰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만 보다가 고개를 떨구어 손에 남아 있는 온기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너무나도 뜨거웠던 너, 손 너머로 보이는 너의 핏자국. 네가 너무 걱정이 되서 미칠 것 같았다. 이 소란을 잠재우듯, 수업종이 울렸고 아이들은 웅성이며 주변을 준비하며 앉았다. 나도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서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들려오는 말은 너의 응급실행 소식이였다. 너의 온기가 사라진 손을 만지작 거렸다.
어떻게 지나간지도 모를 수업시간이 끝나고 혹시나 해서 꺼내본 핸드폰에는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 .너의 어머니였다. '히데는 XX대학병원 응급실에 있단다. 많이 놀랐을텐데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시계를 보았다. 아직 수업은 한 교시나 더 남았다. 나는 핸드폰을 꽉 쥐고서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하염없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 * *
저기, 여기 환자중에 '나가치카 히데요시'라고 있나요? 다급한 나와 달리 익숙한지 간호사는 차트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고개를 숙이며 감사함을 표한 뒤, 나는 알려주 방향으로 달려갔다. 익숙한 모습, 너의 어머니였다.
"아주머니!"
"카네키구나. 많이 놀랐나보구나."
"아,아니에요. 아주머니, 히데는요?"
"저기에 누워있단다. 아까 안정제를 맞고서 잠들었어."
다행이다. 잔뜩 굳었던 표정을 이제서야 풀 수있었다. 괜찮다는 말 하나에 불안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서 링거를 맞고있는 너를 보며 너의 어머니께 물었다.
"근데 히데 왜 그런거래요?"
"그게, 히데가 PS라고 하네. 각성과정중에 발작이 일어난거라고 하시더구나."
"PS요?"
"그래."
PS. 이제서야 평소와 같지않던 네 모습이 이해가 갔다.
"학생. 학생이 환자분을 만졌을 때, 조금 이상한 점 없었어요?"
"네? 그게...글쎄요?"
"혹시 화내다가 조금 진정되었다거나 그런건 없었어요?"
"그랬던 것같아요."
"음...학생, 잠시만 시간 좀 내줄래요? 학생친구한테 중요한 일이에요."
"네?"
"얼마 안걸릴거예요. 잠깐이면 돼요."
조금 두렵고 겁이났지만, 너에게 중요하다는 말이 나를 움직였다. 고개를 끄덕이고서 흰 가운을 입은 의사를 따라갔다. 아주머니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시기에 괜찮을거라고, 금방 다녀오겠다 하고서 조금 뒤쳐진 거리를 좁히려 뛰어갔다. 의사선생님을 따라가니 조금 복잡하게 생긴 기계들로 가득 찬 어느 방에 들어섰다. 의자에 앉으라는 손짓을 따라 앉았다.
"피 뽑을 거니깐 팦 좀 걷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피를 뽑겠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서 뭐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냥 수긍하며 팔을 걷어올렸다. 소독솜으로 핏줄 주변을 문지르고서 고무줄로 팔로묶은 뒤, 조금 굵은 바늘로 찔렀다. 약간의 통증이 느겨지며 피가 뽑이는걸 바라보았다. 채혈이 끝나고서 솜으로 주사자국을 누르며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간호사는 사라졌다.
말 없이 솜만 꾹꾹 누르며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간호사와 함께 아까 본 의사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학생, 이름이 뭐예요?"
"아, 그게. 카네키 켄입니다."
"음, 그래요. 카네키군. 조금 당황스러울수도있겠디만, 잘 들어주세요. 당신에게도 중요한 일이거든요."
"...네."
"학생이 히데요시군을 만졌을 때, 진정효과가 있었다고해서 혹시나해서 아까 채혈한 피로 PS,LS 양성반응검사를 해봤어요. PS검사에서는 음성반응이, LS검사에서는 양성이 나왔어요."
"네?"
"카네키군은 LS인것같아요. 자세한건 정밀검사가 필요하겠지만, 거의 확실하다고 보면 됩니다. 보통 각성 전이면 진정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데, 각성하지 않았는데도 이정도 진정효과가 나타나기도 드물거든요."
"아마 나가치카군과 카네키군이 서로 파트터로 배정될 것같네요."
"파트너요?"
"서로 가까운 사이면 효과가 더 강하게 작용해서 나라에서 그렇게 지정하고 있어요. 두 사람의 반응도 좋은 편이고요."
학교 수업시간에 언듯 들은 내용이다. 서로의 폭주를 막기 위해 파트너를 둔다는 이 이야기. 이런 일이 너와 나에게 일어날 줄이야.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그렇다면 저흰 이제 뭘 어떻게 해야하나요?"
"음...아마 정부에서 시행하는 간단한 교육을 받을 겁니다. 두 사람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은 편이죠? 그렇다면 평소처럼 지내면 별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평소처럼, 그냥 평소처럼 지내면 되는 걸까. 만약에 지금처럼 지내지 못하게 된다면...? 막연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관계가 깨지게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 없다. 미래는 알 수없지만 그런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으니깐.
지금은 불안하다. 자꾸 좋지않은 생각만 난다. 늘 내 곁에 있던 네가 없어진다거나, 네가 나를 피하게 되지는 않을까. 머리속의 생각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물고 또 물었다. 불안해, 나는 네가 나를 떠나지는 않을까. 그런생각을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네가 깨어났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너에게로 뛰어갔다. 네가 누워있던 침대로 달려가니 놀란 눈으로 보는 아주머니와 움찔하다가 웃어주는 너의 모습이 보였다.
"카네키아냐? 이야, 문병와준거야? 감동인데?"
"히데..."
너는 웃으며 뺨을 긁적거렸다. 미안, 많이 놀랐지. 그렇게 말하는 너를 보니 눈물이 차올랐다. 변한게 없구나. 여전하네. 눈을 접으며 웃으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는 울며 웃는 나를 보며 당황한 눈으로 다가왔다.
"왜 울어, 카네키. 너 괜찮아?"
"응, 나 괜찮아. 괜찮아, 정말로."
"많이 놀랐구나. 아까 미안했어. 소리질러서 미안. 나 이제 괜찮으니깐, 그만 울어. 응? 카네키이!"
어째서인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네가 당황하는 걸 보고서 그치려했으나 그러질 못 했다. 말도 못하고 소리죽여 우는 나를 너는 껴안아주며 다독였다. 카네키, 울지마. 왜 그래. 내가 잘못했어, 응?
"히,데. 이제 괜찮아?"
"응응. 물론이지. 지금 완전 쌩쌩하다고!"
다행이네, 걱정 많이 했어. 너는 볼에 맺힌 나의 눈물을 닦아내 주었다. 흐릿해진 시야가 바로 보이며 네 웃음이 보였다. 그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녹아내린다.
혼란스럽고 소란스럽던 병원 응급실에서 너와 나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평생을 함꼐하겠노라고 맹세하고 약속하였다. 나는 늘 네 옆에 있을게. 그러니 너도 내 옆에 있어줘.
그리고 내가 너를 잊는 건 조금 후의 이야기. 낮이지만, 달이 웃고있던 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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