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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피곤해라. 이래서 1교시는 하면 안 되는 건데. 엉망으로 짠 시간표를 탓하며 걷고있었다. 캔커피나 마실까?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만지작대며 자판기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 쪽에서 보이는 어느 익숙한 검은 머리. 너였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이름을 외쳤다.
"카-네-키!!"
"우앗, 히데!"
"이제 학교왔냐? 우아, 부러워라아."
"아, 응..."
당황한 너의 얼굴이 나라는 것을 깨닫자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해보였다. 조금 기운이 없달까? 아니, 얼굴이 조금 붉은데?
"카네키, 너 어디 아파?"
"ㅁ,뭐? 아냐 그런거..."
너의 반응을 보고서 확신했다. 아, 아프구나 하고. 아니라며 도리질 하는 얼굴을 양 뺨을 잡아 고정시켰다. 맞닿은 손으로 열기가 느껴졌다. 조금 심한가 생각이 들 정도로.
"카네키, 너 몸이 좀 뜨거운데?"
"ㅇ,응? 아,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너 이리 와 봐."
히데는 카네키의 이마에 살짝 손을 얹고 남은 한 손을 제 이마에 얹었다. 손이 닿자 느껴지는 약간의 물기. 그리고 제 이마와 달리 뜨거운 카네키의 이마였다.
"너 지금 되게 뜨거운데? 괜찮은거야?"
"응...괜찮아. 금방 나아지겠지."
"정말로 괜찮아?"
눈을 마주하고 물었다. 카네키는 눈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응, 괜찮아. 너는 그렇게 고집을 부렸다. 금방 탄로날 거짓이 담긴 고집을. 일단은 알았다고 하며 주머니에 동전 몇개를 꺼내어 자판기에 집어 넣었다. 너도 그런 나를 보더니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같은 커피를 뽑았다.
치익, 소리를 내며 따진 커피를 마시며 너에게 물었다.
"카네키, 공강이지?"
"어? 응."
"나랑 잠깐 어디 좀 가자."
"어디?"
"동아리실. 잠깐이면 되니깐."
너는 잠시 생각하는 듯 뜸을 들이고선 알겠다고 말했다. 다 마신 커피캔을 휴지통에 집어 넣으며 어서 가자는 듯 눈짓을 했다. 너는 알았다는 듯 눈을 접으며 웃었다. 나를 따라오며 빈 캔을 휴지통에 따라 버리고는 내 옆에 서서 나란히 걸어갔다.
아무도 없는 동아리실의 불을 켜고서 너에게 잠시 소파에 앉으라고 했다. 너는 말없이 소파에 앉았다. 나는 책장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리저리 헤집었다. 아, 찾았다.
"일단 이거 먹어."
책장에서 어렵사리 발굴해낸 약 상자에서 꺼낸 갈색 약병을 보더니 너는 탐탁지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너의 표정을 못 본채 하고는 약병을 네 쪽으로 밀었다. 너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선 말했다.
"나 약 먹으면 정신 못 차리는 거 알잖아. 안 먹을래."
"어차피 한 시간 공강이잖아. 먹고 여기서 한숨 푹 자. 깨워줄게 말 들어."
"...괜찮은데."
"내가 못 보겠어서 그래."
"그래도..."
"어허, 고집피우지 말고!"
"...알았어."
꼭 시간 맞춰서 깨워줘야 해. 알았지? 그렇게 당부를 하고서 너는 감기약을 이에 털어넣었다. 맛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물을 마시고서 소파에 몸을 눕혔다.
"꼭 깨워줘."
"네네, 알았으니깐 자라."
나는 구석에 개켜져있던 담요를 꺼내 너에게 덮어주었다. 담요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너의 눈이 서서히 늬게 껌벅였다. 약이 제기능을 하는지 어느새 너의 눈은 스르륵 닫혔다. 힘이 빠져 밑으로 떨어지는 손을 살짝 잡아 배 위에 얹어주었다. 위아래로 색색거리며 움직이는 너의잠든 모습을 보니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사람 걱정시키게 아프기나 하고 말이야. 정말이지 카네키."
소파에 누워 잠든 너의 모습을 턱을 괴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늘 그랬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너는 내게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네 마음과 네 상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만큼 지내왔으면 내게 기댈 법도 하잖아. 어째서 늘 혼자서 버티려는 건지.
"이쪽은 나름대로 서운하다고."
들리지는 않겠지만 들으라는듯 투덜거림과 함께 속마음을 내뱉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너는 내게 만이라도 솔직해질까? 언제쯤이면 내게 기대줄래, 카네키?
"아, 졸려..."
복잡한 마음과는 다르게 따사롭게 내리쬐는 봄햇살이 자꾸만 내 눈꺼풀을 무겁게 만든다. 나른해져가는 몸을 책상에 기대며 하품을 내뱉었다. 아, 자면 안 되는데...이러다가 잠들면 못 깨워주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어느새 굳게 닫혀버린 눈은 햇살의 따스함을 만끽하며 깊은 잠에 빠졌다. 새근대는 두 사람의 숨소리와 함꼐 초침이 달칵, 달칵, 움직이고 있었다.
* * *
감긴 눈보다도 먼저 깨어난 것은 귀였다. 아무것도 보이지않는 암훅 속에서 들리는 것은 사람들의 멀어져가는 발걸음 소리. 그리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리는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숨소리.
눈을 비비며 한결 가벼워진 몸을 뒤척였다. 뒤척인 몸을 따라 담요가 흘러내렸다. 잠에 취한 눈이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자 바깥에 노을이 제법 물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몇시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보니 '오후 5시 52분'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몇시야 지금."
이미 모든 강의가 끝났을 시간이다.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고개를 돌리자 제 머리 위에 소파 구석에 머리를 쳐박고 잠든 네가 보였다. 팔을 배게삼아 잠든 네 모습이 고등학교때의 모습과 겹쳐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웃음에 움찔하던 몸이 꾸물꾸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리저리 뻗힌 머리와 아직 잠이 덜 꺤 눈이 나를 향했다. 그리고는 잠에 잠겨 제법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깼어?"
"...어."
"...미안, 잠들어버렸다."
"괜찮아. 덕분에 푹 잤고, 몸도 가뿐해졌는걸?"
"그렇다면 다행이네."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너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였다. 그런 모습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왜 웃어."
"그냥?"
"그런게 어디있어. 뭔데?"
"음...히데, 이거 봐봐."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인 너에게 핸드폰카메라로 얼굴을 보여주었다. 옷소매에 짖눌려 벌겋게 찌글대는 너의 이마를.
"와, 카네키. 이런 걸로 웃고말야. 유치하네."
"푸흐흐, 웃긴걸 어떻게 해? 누가 그렇게 자래? 애초에 안 잤으면 그런일도 없었을텐데."
"안 깨워줬다고 지금 보복하는거냐?"
"근데 그건 잘못했잖아. 그래, 안 그래?"
"그렇긴 한데..."
말 끝을 흐리며 눈치를 보는 네 눈과 나의 눈이 마주했다. 나는 싱긋 웃으며 가볍게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아! 아프잖아!"
"그러라고 때린거니깐 아프겠지."
"너...카네키..."
"히데, 나 배고파."
화내려는 너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그러자 너는 화내려는 것을 잊고 눈가에 눈웃음을 머금고서 활짝 웃었다.
"나도 배고파. 저녁시간 다 됐잖아. 밥 먹으러 가자."
"그래. 히데가 쏘는 거지?"
"그런 말은 안 했는데."
"지난번엔 내가 샀는데."
"아, 그래 알았어. 편의점 괜찮냐?"
"아무거나 상관없어."
그 말이 더 어렵다고! 칭얼대는 너의 투정을 들으니 살며시 웃음이 떠올랐다. 툴툴대도 너는 언제나처럼 내가 좋아하는 햄버그 스테이크를 먹으러가자며 천역덕스럽게 굴겠지. 그런 너를 잘 아니깐 이렇게 장난치는걸 너는 알까? 너는 모를 속마음을 숨기려 살풋 웃어보였다.
"왜 자꾸 웃는건데!"
"하핫, 미안미안."
"쳇, 뭐야, 어쨌든 배고프다. 어서 가자. 더 어두워지기전에 나가자고."
"그래."
흘러내린 담요를 들어 원래있던모양대로 접었다. 너는 나의 겉옷과 가방을 내밀며 네 옷의 지퍼를 올렸다.
뭐 먹으러 갈꺼야? 글쎼, 그래. 오늘은 좀 맛있는걸 먹어야겠어. 빅걸 가자! 하여튼간에. 아아, 싫으면 관두라고. 아냐, 좋아. 그래, 그렇게 나와야 카네키답지. 그렇게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너와 나는 나란히 걸어갔다.
그냥 막연하게 생각을 했다. 이런 소소한 행복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고. 언듯 보이는 별에게 빌었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이 정도로만 행복하기를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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