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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카네] -무제

[ TKG ] 2015. 2. 12. 23:20


햇빛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날이였다. 햇님과 함께 어우러져 살랑이는 꽃들 사이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한 아이. 넓게 퍼진 치마 위로 꽃잎 한 장이 내려 앉았다. 조심스레 손 위에 올려 입바람을 부니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간다. 꽃을 향해 나훌나훌 날아오는 나비를 보아하니 어느덧 봄이 온 것 같았다. 나비가 제 주변을 맴돌기에 손가락을 뻗자 그 위로 나비가 날개짓을 멈추고 사락, 내려앉는다. 사박사박, 풀잎을 따라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놀라 날개를 펼쳐 날아가는 나비를 쫓아 고개를 돌리니 저를 보며 환히 웃는 사내가 보인다.


"나비가 보는 눈이 있네."

"히데, 언제 왔어?"

"방금. 어르신께서 부르셔, 카네키."


바람에 휘날린 머리칼을 정돈하며 걸어오는 사내를 보며 싱긋 웃어보인다. 어르신이 어쩐일로 부르실까.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을 보며 중얼거리자 산들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잔뜩 흩뜨려 놓는다.


"설마 혼나는건 아니겠지?."

"지난 번에 자기 깬거 들켰나?"

"자기를 깬건 히데였잖아."

"같이 있었잖아."

"너무하시네요. 정말이지, 이러시면 다 말해버릴겁니다?"

"너무한게 누군데... 자자, 어서 가시지요. 낭자."

"그 소리 싫어하는거 뻔히 아시면서 그리 하셔야겠습니까?"


농입니다만? 짖궂게 웃는 그의 모습에 작은 실소가 터진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구나. 장난 치는 거나, 햇살같이 따스히 웃어주는거나.


어릴 적 부터 서로가 전부였다. 지옥같던 난중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그 두 아이는 살기위해 기방에 들어왔다. 한 아이는 흥을 즐길 줄 알기에, 거문고를 배워 솜씨좋은 악공이 되었다. 또, 한 아이는 외모가 뛰어나고 몸의 선이 고와 춤을 추는 무희가 되었다. 물론 기방에서 일하는 무희는 여자뿐이지만, 그 아이는 그것을 감수하겠다며 제 스스로 치마를 두르고 춤을 추었다. 제 벗이 연주하는 거문고의 선율에 맞추어 나비의 날개짓을 흉내내는 무희는 기방의 제일가는 명물이 되었다.


그런 곱디 고운 아이를 유흥으로 삼으며 즐기고자 하는 이들도 많았다. 여태 접근한 자들은 사내라는 사실을 알면 대부분 실망하며 포기했다. 허나, 이번에 온 사내는 호락호락 하지않았다. 무희가 자신의 밤시중을 들지않는다면 그 아이는 물론, 여기 기방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행수의 부름을 듣고 온 무희가 들은 이야기가.


"...그렇게 되었다. 미안하구나,카네키."

"행수 어르신, 그게 무슨!"

"높으신 분들의 말을 함부로 거스를수는 없단다. 정말 미안하구나. 애야."


방금 들은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다. 밤 시중을 들라는 말은 몸을 팔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자신이 사내인 걸 알텐데도 시중을 들라니. 하지만, 이것 밖에 방법이 없다면...


"아닙니다. 저희를 거둬주시고 길러주셨습니다. 어르신께 보은을 갚는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카네키!"

"히데, 어쩔 수 없잖아."

"그래도 이건-!!"

"히데, 난 괜찮아. 그러니깐 걱정하지마."

"카네키..."

"...괜찮아, 나는."


카네키는 애써 웃어보였다. 더 이상 걱정시킬수는 없었다. 한번만 눈 감고 흙탕물에 뒹군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거면 이 소란도 잦아들 것이다. 그거면 된거야. 그리 생각하며 치마자락을 꼭 쥐었다. 사내를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 행수어른의 손을 잡고서 걸어가는 그 아이를 바라보는 그의 벗은 주먹을 쥐며 이를 갈았다. 그런 표정을 하면서 괜찮다고 하면 다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그 아이의 발자국만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 * *


계집애마냥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머리에는 무거울 정도의 비녀를 꼽았다. 몸 치장을 도와준 뒤, 힐끗힐끗 쳐다보는 기생들이 나갔다. 카네키는 멍한 눈으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꼴이 너무 우스웠다. 절대 지금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않았다. 여자와 같이 치장한 이 모습을, 다른 남자에게 안기려 가는 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그는 거울을 보며 웃었다. 깔깔 거리며 웃었다. 화려한 제 자신이 너무나도 보잘것없고 초라해서 웃었다. 그리고 울었다. 입은 웃고있었으나 눈을 울고있었다. 눈물이 흘러넘쳤다.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울었다. 자신이 너무 미워서, 내가 너무 미워서.


하늘도 무심하시지. 제게 왜 그러십니까. 그리 외치며 울고 웃었다.


"무서워...도망치고 싶어..."


속마음을 내뱉으며 눈물을 흘리자,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가 보였다. 절대 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던 그가 문 앞에 서있었다.


"ㅎ,히데..."

"그렇게 울거였으면 웃어주지를 말았어야지."

"..."


카네키, 도망가자. 머리에 꽃힌 비녀를 뽑으며 담담하게 말하는 그를 보았다. 히데, 지금 무슨?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도망가자니?! 그게 무슨-"

"카네키."


난 네가 그 누구보다 소중해. 어릴떄부터 다짐했잖아. 널 지켜주기로. 그렇게 말하며 숨통을 조르던 허리끈을 풀어주었다.


"나와 도망가자."



그렇게 두 사람은 달리기 시작했다. 그 둘이 기방을 나선지 얼마 되지않아, 무희를 데릴러온 기생이 비어있는 방을 보고 행수어르신꼐 고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내는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무희를 잡아 내 앞에 갖다 바치라하였다. 기방 행수는 자신의 기방을 지키기 위해 알겠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허나, 자신들을 보듬어주고, 먹여살려주었던 기방을 배반하고 도망친 악공과 무희를 위해 달에게 빌었다. 제발 잡히지 말고 멀리 도망쳐달라고, 행수는 빌었다.





* * *




달님이 길을 밝혀주는 숲 속을 뛰어다니던 두 사람은 이 밤을 지낼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동굴을 발견하였고, 그 안에 들어가 몸을 숨기었다. 쉴세 없이 뛰느라 동굴안에는 숨소리로 가득찼다. 그리고 그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하자, 동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을 깨트린 것은 떨리는 목소리였다.

"무서워...너무 무서워, 히데."

"괜찮아, 괜찮을거야."

두려워하며 우는 카네키를 괜찮을거라며 따스히 안아주는 그의 몸이,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게 제 품에 꼭 끌어안아 토닥여주는 그의 손길을 느끼며 흐느꼈다. 우리 이래도 괜찮을까? 눈물이 흘러 그의 옷깃을 적셨다. 그는 말없이 더 꽉 끌어 안았다.

"카네키."

"응, 히데."

괜찮을거야. 괜찮아. 괜찮을거라며 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그가 이상하여 품에서 벗어나 얼굴을 보려하자 팔로 몸을 감싸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히데?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속삭였다. 보지마. 지금 내 모습 보지마. 부탁이야. 물기어린 목소리가 나즈막히 울려펴졌다.
이 못난 사람아. 내가 뭐라고...웅얼거리며 그의 품에 더 파고들며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게. 이 못난 게 뭐라고.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모든 것을 져버리더라도 서로가 있다면 상관없다. 그렇게 애써 다독이며 눈을 감았다. 서로의 품에서 잠들며 생각했다. 어릴 때 부터 함께였으니, 앞으로도 함께 하자고. 그렇게 힐끗 보이는 달님께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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