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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ia










1.

'조금 늦을 것 같아 기다려!! 나 버리지마ㅠㅠ'


하여튼...히데답네. 방금 온 히데의 문자에 답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늦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던게 누구였던가. '알았어. 시작하기 전에만 와.'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한숨을 쉬었다. 벽에 몸을기대며 멍하니 앞을 보았다. 여기저기 붙여져있는 포스터와 현수막들. '아리마 키쇼, 세계 피아노 콩쿨 우승 기념 연주회' 라는 글씨가 지겨웠다. 그렇다고 해서 피아노나 연주회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잔잔하고 감미로운 선율을 좋아하는 편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



단지, 사람이 많은게 싫을 뿐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보기위해 모인 수 많은 사람들. 우글우글,사람들의 머리들이 가득한 이 곳 가운데, 덩그러니 혼자있는것은 나뿐인것같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있는 고독함은 언제나 별로다. 히데가 빨리 오기를 바랄뿐 이다.



-철퍽



"어머, 죄송합니다. 하나, 오빠한테 사과해야지."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떠밀려오는 사람에 한 여자아이가 떠밀려 들고있던 아이스크림을 코트와 내 손에 철퍽-하고 묻혔다. 아이의 엄마와 여자아이는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고선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으으, 최악이야..."



코트는 그렇다쳐도 손에 묻은 아이스크림이 녹아 끈적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휴지로는 안될 것 같아서 화장실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그 때, 사람들에게 가려진 안내판을 보지못해 화장실의 전혀 반대편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아무 생각없이 말이다.











2.


조금은 어두운 길을 계속 걷고있으나 화장실은 나오지 않았다. 이 쯤이면 나올법도 한데. 속으로 불평을 내뱉었다. 손의 끈끈함이 상당히 불쾌했다. 어서 씻어내고싶은 마음과 달리, 걸어도 걸어도 화장실은 커녕 빛도 점차 옅어졌다.



"아무래도 여기가 아닌가..."



뒤늦게서야 길을 잘못들었다는것을 깨닫고 좌절에 빠져있을때쯤, 어디선가 은은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감미로운 음색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리고 뭔가에 홀린 듯이 걸어갔다. 그 소리를 찾아서, 들려오는 소리에 맞춰 심장이 쿵쿵 뛰었다.

빛이 새어나오는 곳에 가까이 가보니 문이 열려있었다. 문 안으로 들어서니 놓여져 있는 열댓개의 의자와 흰색의 그랜드 피아노, 그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새하얀 사람.



"와...멋지다."



나도 모르게 내뱉어진 말이 그의 연주를 방해했나보다. 그의 손가락이 멈추었고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이런, 관객이 있었네요."

"아, 죄송합니다! 피아노 선율이 너무 좋아서그만..."

"괜찮아요.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니 기분이 좋은데요?"



싱긋 웃는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다 떠올랐다. 방금 피아노를 친 이 남자. 오늘 보기로 한 연주회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아리마 키쇼다. 이 사실을 깨닫자 얼굴이 홧홧해졌다. 분명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졌을것이다.



"연습중에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아리마씨!"



허리를 할수있는 만큼 최대한 숙여 사과를 했다. 그러자 숙인 머리 위로 푸흐흐-하는 웃는 소리가 들렸다.



"딱히 방해라고 할건없어요. 오히려 들어주는 관객이 있으면 더 신경써서 칠수있어서 환영인걸요?"

"네?"

"이것도 인연인데, 잠시 앉아서 연주를 들어주시지않으시겠어요?"

"저,저야 영광입니다!!"



화를 내며 나가라고 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따뜻하게 웃어주며 연주를 들어주지않겠냐는 질문에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러자 아리마씨는 가까이에 있던 의자를 피아노 옆에 끌어다놓고선 앉으라는 눈짓을 하셨다. 어색하게 웃으며 옆에 앉자 그가 갑자기 일어섰다.



"뭐가 묻었네요?"

"아,그게 아이스크림..."



제,제가흘린게아니고요 지나가던사람이!! 칠칠맞은 사람이라 생각할까 해명을 하니 아리마씨가 쿡-하고 작게 웃으셨다.



"그래요? 자, 이걸로 닦아요."

"가,감사합니다..."



물티슈를 건네며 그가 내 옆에 앉았다. 조심스럽게 물티슈를 받아들고 손과 코트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냈다. 찝찝함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얼룩을 다 닦아내자 아리마씨는 건반에 손을 얹고서 연주를 시작하셨다. 제목은 잘 모르겠지만 은은하고 감미로우며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긴듯 짧은 연주가 끝나자 그는 어땠냐고 물었다.



"뭐랄까...아리마씨의 손이 건반위에서 춤을 춘달까...그,굉장히 멋있었어요!"

"푸흐흐,춤춘다라- 재미있는 비유네요."

"또, 노래의 선율이 그,나비같달까...부드러우면서 나훌나훌거리는것같아서..."

"말하는게 멋있네요. 아, 이름이?"

"카,카네키 켄입니다!"

"카네키...그래요 카네키군."



안경너머로 그의 시선이 느껴진다. 허공에서 서로의 시선이 부딫히자 괜스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저,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되요. 어렵사리 말을 내뱉자 그는 웃으며 그래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말 놓으게."

"ㄴ,네!"

"푸흐흐, 아까부터 생각해봤는데 너랑 나, 마치 그거 같네."



흑건과 백건. 아리마씨는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웃으셨다. 길고 곧게 뻗은 흰 손가락을 따라 새하얀 머리칼을 보았다. 흑색 건반과 흰색 건반. 흑발과 백발. 그 의미를 깨달은 나도 그를 따라 웃었다.



"연주할때 왜 흑건과 백건을 둘 다 사용하는 줄알아?"

"네?"

"피아노를 연주할 때, 한가지의 건반으로도 칠수있어. 대신, 소리나 음계가 단조롭지. 하지만 두가지를 모두 사용해서 친다면 소리는 훨씬 조화롭고 다양해지지."

"아..."



피아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그를 보았다. 눈이 맑게 빛나는 듯 했다. 역시 피아니스트이구나 생각했다.



"이런, 이제 슬슬 준비하러 가야겠는걸?"

"시간이 벌써 그렇게-"



시계를 보다 문득 여태 한 사람을 잊고있음을 깨달았다. 히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선명하게 빛나는 '부재중 전화 5통' 과 '문자 12통'.



"으아아...어떡하지."

"친구?"

"네. 계속 기다리고있었나봐요...아리마씨 저 이만 가볼께요!"

"잠깐만, 위에 조심-"



아리마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급히 일어선 나의머리와 피아노 위에 올려두었던 쟁반과 부딪혔고 그 위에 놓아둔 커피잔이 나를 덮쳤다. 흰색의 남방이 서서히 커피의 색으로 물들었다.



"으악!"

"미안, 그 곳에 올려두는게 아니였는데..."

"아니예요. 제가 못보고 부딪힌걸요."



오늘 하루 일진 정말 사납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멍청함을 자책하고있을 때, 머리가 무엇인가가 덮혔다. 그가 입고입던 회색 코트다.



"입어."

"ㄱ,괜찮아요! 이정도는."

"내 잘못이기도 하니깐 괜찮으니 어서 입어."

"그럼 아리마씨 옷은..."

"연주회 끝나고 줘. 끝나고 여기서 보자."

"네."



그는 울리는 핸드폰을 들고 '조금 이따 봐.' 라고 하며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그의 코트의 단추를 제대로 채워입었다. 제 몸보다 큰 코트는 손을 잡아먹었고 끝은 무릎을 덮었다.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이게 뭐야."



덜렁거리는 소매를 보며 웃었다. 아직 움직이고 있는 메트르놈이 똑딱똑딱 소리를 내었다. 그와 같이 심장이 쿵쿵거렸다. 이내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정신을 차린 나는 서둘러 연습실을 나섰다.










3.



"카-네-키!! 전화도 안받고! 어딜갔다온거야. 이 자식!!"



사람들 사이에 유난히 튀는 머리를 향해 뛰어가니 히데가 달려와 어깨를 잡고 몸을 흔들었다.



"미안미안! 화장실찾다가 길을 잃어서."

"길을 잃어? 역시 카네키답네. 그나저나 뭐냐 그 옷. 어디서 그런 옷을 입고온거야?"

"아, 커피를 쏟아서 어떤분이 옷을 빌려주셨어."

"커피? 칠칠맞기는. 아, 입장 시작인가봐 들어가자."

"아,응."



입장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려퍼지자 히데와 나는 공연장 안에 들어섰다. 공연장안에는 수없이 깔려있는 붉은 빛깔의 의자와 무대위에 덩그러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있는 흰색의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피아노라, 따분할것같은데말이지."

"그,그렇지 않아! 히데! 피아노연주가 얼마나 감미로운데!"

"어이 카네키, 장난이야 장난. 왜 화를 내고 그래."

"화낸건아닌데...미안해 히데."

"괜찮아. 시작하나보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조명을 보며 히데가 말했다. 웅성웅성거리던 사람들도 조용해지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그가, 아리마 키쇼가 나왔다. 수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고개숙여 인사를 한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또 다시 한번 건반 위에서 손가락들이 춤을 추었다. 그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퍼졌다. 그 울림을 들은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한다. 그리고 홀린다. 그의 움직이는 손가락이 연주하는 음색이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든다. 피아노 연주에 맞춰 심장박동이 요동친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느껴지는 알수없는 감정이 얼굴을 뜨겁게 달군다. 어둠에 묻힌 붉으스름한 얼굴과 연주를 끝내고서 인사를 하는 그의 시선과 마주친다. 또 다시 불규칙하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4.



"히데 잠깐만, 잠시 가야할 곳이 있어."

"어? 가야할 곳?"

"응. 코트 돌려주러."



아까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와 함께 있던 연습실을 찾아갔다. 여전히 빛이 새어나오는 그 곳. 살짝열려있던 문을 여니 아직 옷을 갈아입지않은 그가 있었다.



"아리마씨!"

"연주회 어땠어 카네키?"

"좋았어요. 정말 좋았어요!"



나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뒤를 향한다. 히데를 바라보는 듯 했다. 뒤 돌아보니 히데는 문에 기댄 채 우리 둘을 바라보고있었다.



"친구?"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했다. 순간 히데의 눈빛이 따갑게 느껴졌다.



"아, 코트 돌려드릴게요."

"그래. 돌려줬으니 선물. 카네키, 이거 받아."



코트를 곱게 접어서 내밀자, 아리마씨가 옆에 놓여있던 쇼핑백을 내밀었다. 아무 생각없이 받아든 쇼핑백에는 검은 색의 니트가 들어있었다.



"이걸 왜 저한테?"

"선물이야. 연주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의미에서."

"그래도..."

"한번 입어봐. 사이즈가 맞으려나 모르겠네."



입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며 우물쭈물 하고있으니 아리마씨가 웃으며 뒷쪽에 탕비실이 있으니 그 곳에서 갈아입으라고 하였다. 그말을 듣고서 히데를 쳐다보니 입고 오라는 듯 눈짓을 했다.



"그럼..."



쇼핑백을 들고 탕비실로 향했다. 문을 닫으며 밖을 보니 이유 모를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어색해서 그럴 것 이라 짐작하고서 문을 닫았다. 문이 닫고나서 밖에서 대화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이윽고 잠잠해졌다.










5.


문을 열고 나오니 두사람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한 사람은 마음에 드는지 웃고있었고 한 사람은 인상을 찌뿌리고있었다.



"잘 어울리네 카네키."

"가,감사합니다."

"사이즈도 대강 맞는 것 같고. 다행이네."

"선물 감사합니다. 아리마씨. 뭐라고 감사드려야할지..."

"그냥 선물인걸. 신경쓰지마."



잠깐만, 실밥이 붙었어. 그의 손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목 주변을 매만졌다. 차가운 손가락이 닿자 소름이 오소소-올라왔다.



"앗, 감사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카네키, 슬슬 가자. 차 시간 늦겠어."

"아,응."



말 없이 지켜보던 히데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어째서인지 목소리가 조금 차가웠다.



"아리마씨, 이만 가볼게요."

"그래. 오늘 만나서 즐거웠다. 카네키."



아리마씨가 안주머니를 뒤적이시더니 명함을 꺼내 건네며 심심할 때 연락하라고 하셨다. 얼떨결에 명함을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흡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쉬세요 아리마씨."

"그래, 연락하렴."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서자 표정이 잔뜩 굳은 히데가 보였다. 히데는 아리마씨를 흘겨보고서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문 밖을 나섰다. 먼저 나가버린 히데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히데, 같이 가!"

"..."

"히데!"



주머니에 손을 꽃은 채 성큼성큼 걸어가던 히데는 갑자기 걸음을 멈춘 뒤 말했다. 말투에는 냉기가 잔뜩 서려있었다.



"그 사람이랑 만나서좋았어?"

"뭐?"

"아리마인지 뭔지랑 만나서 좋았냐고."

"갑자기 무슨 말이야, 히데."



입이 아주 귀에 걸려있더라?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 히데가 이해가 되지않았다.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던 그는 머리를 한번 쓸어올리고선 한숨을 내뱉었다.



"아니야...미안."

"왜 그래 히데...?"

"피곤해서 좀 예민해졌나봐. 가자."



그가 뒷모습을 보이며 다시 홀로 걸어간다. 그의 뒤를 쫓아 달려갔다. 달려가 그의 옆에 섰지만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않았다. 조용한 복도에는 두 사람의 걸음소리만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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